여대생 실종사건과 압수수색

집에서 경향신문을 구독하고 있는데.. 어제자 단독 보도에 이런 게 있더군요.

경찰 ‘여대생 실종사건’ 검색 네티즌 무차별 압수수색 [경향신문 | 2009-01-18]

하는 일이 일이라 지난주에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으나 얘기 자칫 잘못했다간 경찰서 끌려가서 조서 쓸 일이 발생할 것 같아 지인 몇명에게만 투덜투덜하고 있었는데… 뭐 이미 여기저기 기사 다 났고, 심지어 공중파 9시 뉴스에서도 방송이 된지라.. 그냥 몇가지만 얘기해봅니다.

보통 이런 문서(통신자료제공요청이라든가)가 접수되면 단서가 붙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사중인 사항이므로 기밀 유지 엄수” 라는 식으로 고지 사항이 붙어있지요. 물론 압수수색까지 집행될 정도면 이미 수사 진행 상황은 까발려진 상황이고… 또 앞서 얘기했듯 이미 공개 수사로 전환되기 때문에 굳이 모른 척 할 필요까진 없을 듯 합니다.

기자들이 생각보다 취재를 잘하네요. 뭐 사건이 이미 공개 수사로 전환된 상태이기 때문에 비공개 수사 단계가 아닌 관계로 상대적으로 쉬웠겠지만.. 보통 이런 일에 대해서 경찰이 어디에 압수수색을 집행했고.. 그런 얘기 시시콜콜 떠벌리는 쪽은 아닌데, 압수수색 사실과 대상 업체(비록 기사 본문에는 NHN과 SK컴즈만 언급되었겠지만), 압수수색 내용까지 나온 걸 보면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싶습니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포털사에 제공 요청한 자료는 “특정 키워드를 검색한 사용자의 ID 등 인적사항”입니다. 그런 내용을 압수수색 신청한 경찰이나 검찰도 검찰이지만, 선뜻 영장 발부해준 법원도 놀랍습니다. 그런 영장이 가져올 파급력에 대해서 감안을 한 것일까요 안한 것일까요. 대체.

기본적으로 “로그인을 하지 않고 검색할 경우” 제공할 데이터가 없는 것은 물론이요, “로그인을 하고 검색을 하더라도” 그 데이터의 양이 무시무시할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NHN의 경우 관계자가 “제출 여부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나, SK컴즈에서 “가능한지 확인중이다”라는 것은 있는대로 받아들이면 될 듯 합니다. 인터넷 업체쪽은 서비스의 지속성 때문에 서버를 통째로 떼가는 등의 압수·수색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서버 떼가서 서비스 중단되면 수사기관에서 책임 안지지요) 요청한 데이터에 대해 추릴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저 영장이 각 회사로 도착한 것이 지난주 금요일, 경향에서 인터뷰 딴 건 당일 또는 토요일인 18일(18일 저녁 기사였으니). 데이터가 있고, 제공을 한다 하더라도 추릴 시간이 필요할 뿐더러, 이런 식의 압수수색이 결코 흔한 케이스가 아니기 때문에(아니, 전 이 업무하고 난 이래로 처음이었습니다) 확인할 시간도 필요한거죠(SK컴즈). 그리고 엄연히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압수수색이 집행된 업체쪽에서 “줬는지 안줬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겁니다(NHN).

형사소송법에 의해 집행되는 압수수색의 경우, 집행을 거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구글이 음란물 수사를 위한 검색 기록의 제출을 법무부가 요청했으나 거부했다고 하죠? 재판부에서 요청하거나 허가한 것이 아닌 이상 법무부 자체의 요청, 즉 한국의 법체계로 보면 통신비밀보호법이나 그에 준하는 법령을 근거로 요청했을텐데, 한국에서도 솔직히 통신비밀보호법 등을 근거로 요청되는 통신사실확인자료 등의 자료 제출을 요청받았을 때는 거부할 수 있습니다. 처벌 조항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구글에 대한 압수수색이 미국 법원에 의해 허가되어 집행되었다고 할 때, 구글에서 과연 거부할 수 있었을까요? 압수수색은 수사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강제 집행 수단인데 말이죠. 서버를 다 들고 가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몇번이고 반복하는 얘기지만, 압수수색이라는 건 쉽게 거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도대체 왜 “포털이 이런 데이터도 줘? 이런 쳐죽일 색히들…”이라고들 쉽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닌 말로 다니는 회사에 법적 문제가 발생했어요. 관련해서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 발부해서 집행관들이 들어왔어요. 그러면 꼼짝마라입니다. 거부하거나 방해한다? 형법 제136조에 의해 공무집행방해 성립되죠. 영장만 들고 있으면 집행관들이나 수사관들이 사무실에서 이것저것 다 집어가더라도 어쩔 수 없다니까요. 형사소송법 제119조에 의해서 집행 장소에서 모든 사람을 다 퇴거시키고 진행해도 할말 없습니다.

뭐 여튼, 그런 데이터를 안 쌓아두고 못 주는 편이 가장 해피하겠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설령 쌓아둔다 하더라도 어느 사용자가 뭘 검색했는지까지 세세하게 다 쌓아두고 있는 곳은 “웹검색기록 저장이 활성화되어있는 구글”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을 것이라 보입니다. 더군다가 이런 일까지 터졌으니 덜 귀찮기 위해서라도 싹 날려버리는게 편하겠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수사 기관의 심정은 조금이나마 이해를 못하는 바 아닙니다만, 솔직히 이번 일은 수사 기관의 완전 헛발질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데이터가 있다 하더라도 0에 가까울 꺼고, 막대한 데이터가 있다 하더라도 그거 받아서 분석은 어느 세월에 다 하시려는지.. 너무 편하게 수사하려고 하시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포털은 이제 아주 수사기관용 데이터 베이스 취급이나 받네요, 거참. 세금 꼬박 꼬박 내가면서 수사 기관이 해달라는 거 절차에 따라 해주는데, 이젠 그냥 자료실 취급이예요. 그 와중에 무리한 수사를 하는 수사 기관보다는 포털이 더 나쁜 색히란 얘기를 들으면 가슴 아프죠. 네. ⓣ

6 댓글

  1. 요새 그런 일이 있었군요! 범죄 사건에 호기심이나 궁금증 갖고 검색해보는 사람들, 신문 기사를 인터넷으로 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엄청 많을텐데, 경찰에서 그 엄청난 자료를 다 뒤져본다고 두드러지는 단서를 얼른 잡으실 수 있을지 살짝 의문이 떠오르기는 하네요. 법집행으로 강제력이 발생하면 보통 회사(인터넷 포털도 포함)에서야 별 수 없는 거지요 뭐~

    경찰의 아이디어는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범인이라면 두려운 마음에 인터넷으로 해당 사건에 관한 기사나 정보를 인터넷으로 가장 많이 검색해보지 않았을까? 그런 네티즌들을 용의선상에 두고 수사하면 그 중에 진범이 나오지 않을까? 수사하시는 분들의 답답한 마음이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으신 거겠지요. 범죄 해결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말이지요.

    문제는, 말씀하신 대로 우리나라 포털 검색 엔진에 비로그인 사용자의 기록이 남지 않는다면, 그게 난감한 일이네요. 만일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아서 추적이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아무리 방대하고 힘든 데이터 분석이라도 떼거리로 달려들어서 필사적으로 해내야 할 일이겠지만요…….. 경찰에서 애쓰시는데 만일 헛수고로만 그친다면 그야말로 낭패잖아요. 사건 터질 때마다 이래저래 고생하시는 분들이 생기는군요. (이번엔 경찰만 아니라 포털 회사 직원분들까지…….) 아무튼 사건이 해결되어야 할텐데요.

    1. 저도 모쪼록 사건이 잘 해결되길 바랍니다.

      다만, 이번 포스트는 그 효과가 불분명할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공개될 경우 수사기관에 대한 반감만 공연히 몇배로 키울 수 있는 수사 기법에 대해 불평을, 그리고 그로 인해 공연히 욕먹는 업체들에 대해 다소간의 변명을 해보고자 쓴 내용입니다. 엄한 짓은 수사 기관에서 했는데 엉뚱한 업체만 욕먹잖아요..

      그리고 이번 압수수색이 설령 “실효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빌미로 이런 무리한 수사 방식이 널리 퍼지게 된다면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판단입니다.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 말이죠.

  2. 고생이 많으시네요. 저도 이 기사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또 캔커피 하나 들고 담배를 피우시는 모습이 바로 상상이 되구요.

    수고하세요~

  3. 다른 건 다 차치하고,
    범인이 수사 진행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네이버에서 일일이 로그인한 뒤 검색어를 입력할까요?
    경찰은 범인이 굉장히 부지런한 친구라고 생각하나보군요. 친절한 범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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