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쓴다, 정보통신부.

By | 2007년 03월 26일

정부, 인터넷 음란 동영상과 전쟁 선포(종합)

사용자 삽입 이미지며칠전 벌어졌던 음란물 게시 사건에 대해, 정보통신부와 수사당국이 강하게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음란 동영상과의 전쟁”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써가면서 ‘이참에 아예 뿌리를 뽑겠다’라고 선언까지 했군요. 그동안 “○○범죄와의 전쟁”이 전세계 역사상 단 한번도 완벽하게 승리로 끝난 적이 없다는 것은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이런 정부 기관쪽의 움직임이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것은 인정을 해야겠습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창욱 기자 = 정부가 포털사이트에 유포되는 음란물 동영상을 막기 위해 정통부, 수사당국, 포털사업자 등 민-관이 핫라인으로 연결되는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신고 센터를 운영하는 등 `인터넷 음란 동영상과의 전쟁’에 나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스러운 점은 이 정책의 집행이 지나치게 규제 일변도로 흐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원인이 18일 야후! 코리아 탑에 노출된 음란 동영상이었기 때문에, 정책 집행의 주된 타겟은 자연스럽게 포털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물론 일부 대형 사이트나 동영상 전문 사이트들도 대상이 되겠지만요).

한국 정부기관 규제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나 기술적 지원없이, “이거 해, 알았어? 하라 그랬지? 왜 안해? 안한다 이거지? (실제로 가능한지는 상관없이) 너 벌금 얼마. 땅땅땅” 매사 이런 식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고, 어떻게 하던 간에 오로지 결과물만 원하는, 전형적인 후진국식 규제 정책 수립 및 집행입니다. 그런 정책에 맞추다보니 회사들이 후진국스럽고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잖습니까. 그렇다고 경총이나 전경련의 ‘규제가 너무 많아 한국에서 회사 못해먹겠다’는 식의 칭얼거림을 인정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이 양반들은 뭐만 했다하면 지들 삽질은 생각 안하고 규제 탓만 하죠).

형편이 넉넉한 회사라면야 모니터링 요원을 대폭 늘려서 24시간 내내 모니터링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라면 모니터링 요원을 쓰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거기에 아무리 형편이 넉넉하더라도 인건비 및 각종 비용 상승이 안 부담스러울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다고 정부에서 이런 것에 대한 지원을 해주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거죠. 책임만 지우고, 부담은 분담하지 않습니다. 해주는 건 없고, 정부에서 지시한 것에 대한 결과물은 산출해야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 죽어나는 건 회사요, 결과 가지고 거들먹대는 건 정부기관입니다.

또 한가지, 정책의 다른 문제점은 일관성과 꾸준함의 결여입니다. 한번 수립한 정책은 유관 기관과 회사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함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이 시효 만료시까지 꾸준히 변경되지 않고 적용되는 케이스는 없다고 보셔도 되겠습니다. 물론, 시장과 사회의 변화에 맞춘 정책의 방향 수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정책 집행은 그렇다기보다는 속된 말로 담당자 맘대로 방향이 마구 바뀝니다. 담당자가 급작스럽게 교체되는 것은 비일비재하고, 정책의 본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시효 만료시에는 완전히 누더기가 되어있죠. 장담하는데, 이번 음란 동영상 대책이라고 불리는 정책의 기조도 1년 못갑니다. 한 6개월만 지나고 담당자 바뀌고 인수인계 제대로 안되어서 나중에는 흐지부지 사라질껄요? 그렇지 않다면야 장기적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지금 회사들에게 부담스럽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아래와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모텔에서 불륜/간통이 벌어졌다고 해서 모텔이 책임져야하나?”


어떻게 보면 회사들도 어뷰징을 당한 피해자인데(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완전히 이건 뭐 주범 취급을 받아도 이만저만이 아니군요. 피해자 대우를 해달라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주범 취급은 안해야죠. 하긴, 정보통신부가 그 어뷰저를 잡기 어려우니 손대기 쉬운 회사들이나 들볶는 거겠지만요. 언제나 그런 식이죠. 어디, 얼마나 가나 봅시다.

Author: 너른호수

2004년부터 모 포털 사이트 알바로 시작한, 취미로 하던 웹질을 직업으로 만든 일을 굉장히 후회하고 있는 이메일 서비스 운영-기획자 출신 앱 PM(?)-SI 사업PM. 메일쟁이로 지낸 15년에 치여 여전히 이메일이라면 일단 관심이 갑니다. 버팔로이자 소원이자 드팩민이고, 혼자 여행 좋아하는 방랑자. 개발자 아님, 절대 아님, 아니라고!

7 thoughts on “애쓴다, 정보통신부.

  1. 사막의독수리

    저대로라면 일부러 악의를 품고 포털을 공격하면 포털 망하는 것은 일도 아니겠습니다. 예를 들어 1000명이 성인 동영상 하나씩 같은 시간에 올리면 개인의 처벌은 같지만 포털의 처벌은 1000배가 되니 말입니다. ActiveX에 이어서 또 삽질을 추가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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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삼구

    비단 이런 일들이 온라인 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죠. 식당을 조금만 크게 해도 수많은 규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규제라는 놈이 무슨 사건만 터지면 바뀐다는 점이죠.
    법규의 각론을 장관령으로 넘기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밀한 부분까지 국회가 처리해주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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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막의독수리

      기업에게 레드 라인을 긋지 말고 레드 카펫을 깔아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레드 라인도 모자라 폴리스 라인까지 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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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너른호수 Post author

      이삼구님//규제만능주의죠 뭐.. -_- 그렇다고 각론을 국회가 처리해주기에는 그 양반이 너무 “바쁘셔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막의독수리님//레드 카펫은 고사하고 길가는데 방해나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진압봉 안 휘두르는게 다행이라니까요.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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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asadal

    글 잘 읽었습니다. 너른호수님의 전체적인 기조에는 공감합니다. 제 생각을 더한다면… 모텔주인을 처벌하려는 이유가 모텔에서 불륜이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모텔 밖 사람들이 불륜 현장을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정통부가 해결책이랍시고 내놓은 방안인데, 모텔 주인더러 수시로 객실문을 열고 누가 불륜을 저지르는지 아닌지 일일이 확인하라는 것이죠. 현실성 없는 건 이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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